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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옥 [An Kiok]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민족음악 > 연주가
9분류 인물
집필자 배인교
출생일1894년 5월 28일
사망일1974년 1월 13일
출생지전라남도 나주군 남평면 대교리
정의
일제시대에 창극 활동을 했던 월북국악인으로, 전통 민속음악작품의 창극 형상화와 창작 활동, 민족음악 후진양성사업에 노력했다.
용례/관용구
“안기옥의 민족음악활동은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끊임없이 진행되여 남반부에서 명창으로 불리우던 박동실, 조상선, 림소향, 조해숙, 공기남, 정남희, 최옥삼을 비롯한 수많은 명배우들이 우리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오게하는데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다.” 최석봉, 「(해빛과 영생) 안기옥과 그의 음악활동」, 『조선예술』, 제8호, 1994.
내용
창우집단출신의 음악인이며 1904년부터 김달진에게 가야금을 배웠다. 1914년부터는 가야금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에게서 산조를 사사하였다. 전주예기조합에 있는 동안 박기남에게서 거문고를 배웠다. 1910년대 후반에는 협률사활동을 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조선성악연구회에서, 그리고 1940년에는 한양창극단에서 창극활동을 하였다.
일제에 항거하는 활동을 하였으며, 1946년 6월에 단신으로 월북하였다. 1947년 4월에는 조선고전악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였으며, 창극유산들을 정리하고 창극배우들을 양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야금과 장고, 아쟁 등의 교재곡들을 만들어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6.25 전쟁 시기에 박동실, 조상선, 임소향, 조해국, 공기남, 정남희 등을 월북시키는데 일조하였다.
1951년 8월에 독일의 베를린에서 있었던 제3차 세계청년학생축전대표로 참가하였으며, 195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1959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제7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도 축전대표로 참가하였다.
안기옥은 전통적인 민속음악작품들인 <춘향전>, <심청전>, <흥보전>, <배뱅이굿>, <장화홍련전>을 창극으로 형상하였으며, 민족관현악합주곡 <조국산천>, 민족기악중주곡 <새봄>(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특등상), 창극 <강건너 마을에 새노래 들려온다>, 무반주합창 <법성포 배노래> 등을 창작하였다.
안기옥은 민족음악 후진양성사업에도 힘썼다. 그는 평양음악대학 민족음악학부 민족기악강좌장으로 사업하면서 모든 악기들의 교측본과 악기 교재를 만들어 과학적인 민족기악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애썼다.
안기옥은 1952년에 공훈배우가 되었으며, 1959년에는 인민배우가 되었다. 또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민족음악연구소 소장, 평양음악무용대학 민족음악학부 기악강좌장, 세계청년학생축전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관련어 월북국악인, 평양음악대학, 인민배우, 공훈배우, 조선고전악연구소
동의어 安基玉
관련자료(북) 장영철, 『조선음악명인전』, 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 1998.
최석봉, 「(해빛과 영생) 안기옥과 그의 음악활동」, 『조선예술』, 8호, 1994.

이미지

안기옥

이미지명 : 안기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