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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방송음악단 [Cinema and Radio Musical Company]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음악 > 공통 > 공통
9분류 조직
집필자 노동은
시기1958년 5월 7일
정의
영화와 방송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북한의 공연단이다.
규모와 구성
양악관현악단과 민족관현악단 및 배합관현악단, 경음악단, 합창단, 독주가, 독창가 등을 구성한 수백 명의 종합예술단이자 중앙예술단체이다.
내용
영화와 텔레비전, 라디오 등 영상음악 및 방송음악을 창작하여 녹화, 녹음하고 공연하기 위하여 조직된 ‘영화 및 방송음악단’은 대동강변의 국제영화관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립 당시 명칭이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관현악단’이었다. 그만큼 영화음악을 전문으로 창작 공연하는 관현악단이 중심이다. 창립시 40명이었던 관현악단은 1960년대 하반기 영화분야에 대한 김정일의 집중적인 지도와 지원으로 그 중요성과 규모가 커졌다. 이것은 영화예술이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직관예술로서 북한의 주체문학예술을 건설하기 위한 선차적인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1969년 11월 ‘영화음악단’으로 개편, 120명 3관 편성의 관현악단으로 편제되어 영화음악과 기악음악 창작 및 연주를 중점적으로 공연하였다. 동시에 80여 명의 성악가 중심의 합창단과 경음악단 및 민족기악중주단 등을 보완하였다. 1971년 4월에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영화음악단과 2.8예술영화촬영소 관현악단 그리고 국립교향악단을 조정하여 ‘영화음악단’으로 개칭 개편하고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독립, 영화음악예술을 더욱 집중시켰다. 1970년대 혁명가극시대가 전개되면서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파는 처녀>를 혁명영화로 옮기고, 예술영화 <성장의 길에서>, <꽃피는 마을>, <이 세상 끝까지> 등 영화 작품 속에 음악과 노래를 창작 연주하였다. 1978년 3월에 영화음악단과 방송음악단을 합하여 ‘영화 및 방송음악단’으로 개칭, 녹음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로 독립하여 현재에 이른다. 다부작 장편 예술영화를 비롯한 예술영화·기록영화·과학교육영화·아동영화·텔레비젼소설 등 모든 영상음악과 방송음악을 맡아 연주하여 북한주민들의 사상정서교양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80년작 예술영화 <조선의 별>에 나오는 <동지애의 노래>(리종순작사, 성동춘작곡)와 <열 네 번 째 겨울>의 <봄을 먼저 알리는 꽃이 되리라>(최희건작사, 김건일작곡) 등은 북한에서 가장 대중적인 노래가 되었다. 작곡가, 지휘자, 단원, 독창자, 독주자 등에는 인민예술가(인민배우) 및 공훈예술가 출신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다. 조선영화문학창작사와 조선예술영화촬영소와 함께 북한영화의 3대 기둥으로 불린다. 2008년 창립50돌을 맞이한 ‘영화 및 방송음악단’은 2만 7천 여곡의 예술영화음악, 2천 500여 곡의 드라마 음악, 1만 6천 여곡의 아동·과학기술영화음악 등 모두 4만 5천 500여곡을 창작 공연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김일성훈장과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 받았다. 북한의 CD판매소들에서 판매되고 있는 화면반주음악이나 아동음악, 노래묶음들은 거의 이 음악단에서 형상하여 녹음한 것이라 하며, 2005년 남북 최초로 합작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왕후심청>에 ‘영화 및 방송음악단’이 음악부분에 참여하였다.
관련어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관현악단,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영화음악단, 영화음악극장, 김일성훈장
동의어 영화방송음악단
관련연구(남) 노동은, 『한국음악론』, 파주: 한국학술정보, 2002.
관련자료(북) 「당창건 50돐을 앞두고, 영화음악창조에서 혁신이 일어났다: 영화및 방송음악단을 찾아서」, 『조선예술』, 제8호 루계464, 1995.

이미지

영화 및 방송음악단

이미지명 : 영화 및 방송음악단

영화 및 방송음악단2

이미지명 : 영화 및 방송음악단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