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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춤 [Pongsan Mask Dance]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공연 > 무용 > 민속무용
9분류 작품
집필자 한경자
정의
황해도 봉산 지방을 중심으로 퍼져 있었던 대표적인 탈놀이의 하나이다.
내용
고려 말엽부터 보급되어 오는 민속무용 유산의 하나인 <봉산탈춤>은 황해도 일대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주제나 예술적인 면에서 우수하여 북한의 탈춤을 대표하고 있다.
<봉산 탈춤>의 대본으로는 7과장, 11과장, 12과장으로 구성된 것이 전하여 온다. 이렇게 <봉산탈춤> 대본이 여러 종류인 것은 탈춤대본이 보통 구전되어 내려오기 때문에 전수자들의 개성에 따라 내용이나 형식이 조금씩 변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대본들중에서 12과장으로 구성된 것이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는 북한이 야외에서 연희되는 <봉산탈춤>을 무대에서 공연되는 민속무용으로서의 <봉산탈춤>으로 재구성하면서 나온 것이다.
<봉산탈춤> 12과장 대본은 상좌춤, 팔목춤, 법고춤, 사자탈놀이, 사당춤, 노승, 신장사, 취발이, 양반, 포도비장, 미얄, 남극노인 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산탈춤>은 주로 춤으로만 구성된 부분과 극적인 이야기를 가진 부분으로 나뉜다. <봉산탈춤>의 내용을 주제별로 보면 위선으로 가득찬 중들을 풍자 조소한 부분, 무능한 양반들의 허위와 기만을 풍자 비판한 부분, 서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봉산탈춤>은 재치 있는 대사와 춤과 노래가 결합된 형태로 매 과장들에서 추어지는 춤과 재담들은 다양하고 개성적이며 특색이 있다. 타령장단에 맞추어 한삼을 뿌리거나 휘저으며 추는 춤들은 역동적이며 활발하여 관중들의 흥를 돋구어 준다.
봉산탈은 흙으로 탈의 모형을 빚고 그 위에 종이를 여러 겹으로 붙여 말린 다음 흙 모형을 떼내고 종이위에 눈, 코, 입 등을 그리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봉산탈춤>은 사방에 불을 피워 그것을 조명으로 춤을 추었는데 춤이 끝나면 쓰고 있던 탈을 불에 던져 태워버리고 이듬해에 다시 탈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봉산탈춤>의 반주는 피리, 저대, 장고, 북 등을 가지고 연주활동을 벌이는 민간기악단인 삼현육각이 맡아 수행하였다.
<봉산탈춤>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 속에서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널리 공연되었으며 탈춤판을 통해 여러 가지 반일모임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민족문화유산말살정책에 의하여 존폐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해방 이후 봉산탈춤을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예술공연 종목의 하나로 지정해 <봉산 탈춤>을 계승 발전시키도록 하였다. 또한 ‘봉산탈춤보존회’를 결성하여 봉산탈춤을 보존하도록 국가적인 조치도 취해주었다.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반영한 춤동작으로 구성된 <봉산 탈춤>은 귀중한 민족유산으로서 지난날 야외에서만 공연되던 <봉산 탈춤>이 무대에 오르고 봉산탈춤의 원형에 기초하여 탈춤의 다양한 형상이 재창조되어 여러 극장들에서 공연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봉산군과 사리원시를 비롯한 황해북도의 여러 지방에서 널리 보급됨으로써 <봉산탈춤>이 이어지고 있다.
『로동신문』은 「봉산탈춤에 비낀 숭고한 애국의 뜻」(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 박사 류민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일성이 “봉산탈춤보존회를 결성하여 이 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전후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봉산탈춤을 나라의 재보로 보존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작품을 가지고 기록영화를 만들도록” 하였고, 김정일은 1955년에 나온 기록영화 <봉산탈춤>을 “다시 더 잘 편집할 데 대한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봉산탈춤은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기간에 공연되었고, 1992년 평양에서 진행된 국제무용이사회 성원들의 회의를 계기로 그 학술적 및 예술적 의의가 재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정녕 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와 은혜로운 손길이 이썼기에 봉산탈춤은 오늘도 민족예술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1994년 8월 23일자 방송에서 어린 나이의 김정일이 1954년 7월 12일 김일성과 함께 함경북도예술단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당시 공연중이던 탈춤이 “잡귀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농민들이 탈을 이용해 귀신을 몰아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우리 조상이 가난하게 산 것은 귀신 때문이 아니라 지주들의 착취 때문”이며, “흉칙스런 모양의 탈을 쓰고 추는 춤을 주민들이 싫어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무용은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내외통신』,1994년 8월 24일). 해서탈춤, 봉산탈춤, 통천가면극, 북청사자놀이 등 북한지역 가면극은 1960년대 중반 이후에 전승이 단절되었다가, 1989년 평양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1988년 무렵부터 복원한 봉산탈춤을 선보였다. 그러나 템포도 빨라지고 내용도 많이 개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어 은률탈춤, 강령탈춤, 해주탈춤, 북청사자탈춤
관련연구(남) 김백봉, 『봉산탈춤 무보』,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
관련자료(북) 김일출, 『조선 민속 탈놀이 연구』, 평양: 과학원출판사, 1958.
리순정, 『우리 나라 민속무용』, 평양: 예술교육출판사, 1991.
박종성, 『조선민속무용』, 평양: 문예출판사, 1991.
최승희, 『조선민족무용기본』, 평양: 조선예술출판사, 1958.
참고자료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편, 『문학예술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2.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백과사전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6: 문학예술』,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