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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 [Monument to the Victorious Battle in the Musan Area]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미술 > 조소
9분류 작품
집필자 박계리
시기1971년 제작, 2002년 증축
정의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은 김일성이 1939년 5월 22일부터 23일까지 함경북도 무산군(지금의 양강도 대홍단군)에서 일본군과 벌였다는 무산지구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미술이다.
용례/관용구
매개 부분 조각들은 자기의 뚜렷한 형상적과제를 가지면서도 하나로 통일되여 무산지구전투정형과 함께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의 한 력사적시기를 서사시적화폭으로 일반화하고있다. 『문학예술대사전(DVD)』, 2006.
내용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은 1971년 5월 높이 35m의 탑과 김일성의 사진을 새긴 부조 등으로 처음 세워졌다. 그리고 2000년 기념탑을 새롭게 만들라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2002년 5월 23일 기념일에 맞추어 증축되었다.
증축 때 가장 큰 변화는 기념탑이 총대와 총창을 형상화한 총대탑으로 바뀐 점이다.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의 구성은 가장 앞에 위치한 김일성 상, 그 뒤의 총대탑, 오른쪽의 길이 35m, 높이 4.1m의 대형 부주제군상, 왼쪽의 길이 12m, 높이 4m의 혁명사적비로 되어있다.
이 작품에서 김일성 상은 20대 청년장군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는데 김일성이 활약을 펼쳤던 어린 나이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선군시대’를 위한 기념비미술로 재탄생하며 가장 부각된 것은 총대탑이다. ‘총’은 북한의 총대중시사상에서 비롯되어 선군정치를 표상한다.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에는 원래 있던 탑신의 윗부분에 총창을 결합함으로써 1971년 초기 기념탑의 탑신을 완전히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새로이 탑의 형식을 변형시켰다. 그리고 탑의 높이를 무산지구전투 승리일이라고 하는 1939년 5월 23일에 맞춰 39.523m로 조성하였다.
개조된 구성에서 기본주제와 부주제의 결합방식은 동상과 총대탑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배치되었다. 부주제군상은 부조로 길에 늘어져 있고, 김일성 상은 이들과 간격을 두면서 크게 형상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주제군상은 인물과 함께 벌판, 수림 등 환경 묘사를 잘 활용하여 화면에 공간적 깊이를 조성하고 여백의 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
1971년 제작된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이 2002년 재건축되면서, 이 탑은 김일성의 혁명업적이 아닌 ‘백두산장군들’의 혁명 업적을 표상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백두산장군’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일컫는다. 새로 제작된 부주제군상 앞면에는 김정숙의 업적이, 부주제군상 뒷면에는 김정일의 친필서한과 함께 김정일의 업적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북한 미술계는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이 항일운동 때부터 이어진 총대중시사상, 즉 선군사상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이 작품을 선군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비이자 기념비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은 작품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관련어 대기념비, 기념탑, 기념비미술
관련자료(북)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백과사전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6 : 문학예술』,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8.
참고자료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문학예술사전 중』,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1.

이미지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

이미지명 :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