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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예술단 [City And Province Art Trou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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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이론-공통 > 공통 > 조직
9분류 조직
집필자 오양열
시기1947년~1949년(창립 시기), 1972년 12월(개칭 시기)
정의
일반 주민과 청소년, 노동계급과 농업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무대예술 활동과 예술선전활동을 펼치는, 북한의 시·도 소속 종합공연예술단체이다.
규모와 구성
시·도 예술단은 상당히 방대한 규모의 단체이다. 각 시·도 예술단이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는데, 시·도 예술단 중 가장 규모가 큰 함경남도 예술단의 경우 예술부단장 밑의 실무 예술인만 600여 명에 달할 정도이다. 이밖에 행정부 단장 밑에 조직계획과와 보위대, 관리부단장 밑에 관리과와 공연조직과 등이 있는데, 100여 명의 관리직 직원과 20여 명의 보위대원들이 있다. 보위대는 보안과 의전, 조직계획과는 예술단 내 모든 창작과 공연 활동을 장악, 통제하고 총괄한다. 예술단 내 당조직으로는 예술단 전체를 관할하는 초급당비서가 있고, 그 밑에 조직부비서와 조직지도원, 선전부비서와 선전지도원이 있으며, 각 과에는 부문당비서, 그리고 각 조에는 세포비서가 있다.
함경남도예술단을 중심으로 예술부문의 구성을 보면, 예술단장 밑에 예술부 단장이 있고 그 밑에 창작과(작곡실, 작가실, 안무실, 미술실 등 50여 명), 창조과(연출실, 지휘실, 무용지도원실, 성악지도원실, 음향효과실 등 30여 명), 기악과(현악조, 관조, 타악기조, 민악조, 전자악기조 등 90여 명), 무대미술과(장치반, 조명 1~3조, 공예실, 분장실, 의상실 등 130여 명), 기량과(기량지도원 3명), 성악과(남성 고음조, 여성 고음조, 남성 저음조, 여성 저음조, 독연조, 주/단역조, 방창조 등 120여 명), 무용과(무용 1~5조, 독연과 등 100여 명), 화술과(남자 화술, 여자 화술, 분장사, 효과사 등 60여 명) 등이 있다.
내용
주민들에게 문화예술작품으로 당의 사상과 시기마다 제기되는 정책을 전달하고, 다양한 형태의 무대예술작품들(노래와 음악, 가극과 연극, 무용, 재담, 종합공연 등)을 창작 공연하여 주민들의 문화정서 교양에 이바지하며, 시·도 내 공장과 기업소들, 그리고 농어촌 등을 찾아 예술선전활동을 통해 노동계급과 농업근로자들의 투쟁을 힘 있게 고무 추동하고, 국가 기념행사와 경축행사들을 지방 차원에서 거행하는 등의 목적과 기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 북한의 행정구역은 1직할시(평양), 2특별시(라선, 남포), 9도(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황해남·북도, 자강도, 량강도, 강원도), 3지구(신의주특별행정구, 금강산 관광지구, 개성공업지구)로 나뉘어 있다. 각 시·도에는 대규모의 종합공연예술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대개 전용공연장이 있으며, 창작과 공연 활동과 함께 당 정책 선전, 경제 선동 활동을 병행한다.
한편 시·도 예술단은 1년 내내 계속되는 국가 기념행사, 경축행사들을 지방 차원에서 개최하기도 하고 평양에 가서 치르기도 한다. 평양에서 치르는 대표적인 행사는 격년제로 열리는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중 전국 전문가예술축전(중앙예술단체들과 시·도 예술단들이 참가)이다. 전문가 예술축전에 이어 전국 예술선전 대축전과 전국 기동예술 선동대축전, 그리고 전국 근로자 예술축전이 개최된다. 각 시·도 예술단에 관한 대강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남포시예술단: 1948년 5월 28일 창립된 남포시 소속 종합공연예술단체로 음악무용 및 화술 작품 보급기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가극〈연풍호〉와〈이 세상 끝까지〉, 연극〈지평선〉, 단막극〈네 번째 꽃송이〉, 가요〈내 사랑 나의 기대〉, 무용〈룡강 기나리〉등을 공연했다.

○ 평안남도예술단: 1980년 2월 17일 안주 예술선전대를 모체로 하여 발족한 평안남도예술단은 평남 안주시에 위치해 있으며, 음악, 무용, 화술 등 무대 종합예술작품들을 창작 공연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가요〈청춘의 참된 사랑〉(1991), 가요〈조국에 바치는 참된 사랑〉(1992), 재담〈병사들이 지나간 뒤〉(1992), 단막극〈참된 전위〉(1993), 단막극〈포전길에서 다진 약속〉(1994), 무용〈수령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네〉(1994), 가요〈아느냐 농장 벌아〉(1995),〈영원히 빛나라 청천 다리여〉(1997), 관현악〈정일봉에 안개 흐르네〉(1998), 장새납독주곡〈우리식 좋아〉(1999), 사이극〈어느 한 언제 건설장에서〉, 풍자극〈깨여진 유골 단지〉(2000) 등이 있다.

○ 평안북도예술단: 1948년 8월 5일 평안북도 내의 여러 지방에서 활동하던 경음악단, 합창단, 예술선전대, 이동 예술대 등을 통합하여 평안북도음악단으로 발족한 후 평안북도가무단을 거쳐 1972년 12월에 지금의 평안북도 예술단이 되었다. 평북 신의주 시에 위치해 있으며 전국 규모의 대회, 축전, 경연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 평안북도가무단 시절 창작 공연한 민족가극〈무궁화꽃수건〉(1966), 김정일 지도 아래 일반 가극을〈피바다〉식 혁명가극으로 개작했다는〈은혜로운 해빛(햇빛) 아래〉(1972, 이후 30년간 600여 회 공연)가 평안북도 예술단의 대표작이다.
1990년대에 단막극〈열세 번째〉(1993), 음악극〈이루지 못한 소원〉(1995), 가요〈정일봉의 붉은 노을〉(1996),〈조선옷이 제일 좋아〉(1997),〈우리의 뒤에는 평양이 있다〉(1998), 경가극〈노 박사의 이야기〉(1999) 등을 창작 공연했고, 2000년대의 대표적인 공연작품으로는〈한드레벌의 새 전설〉(2000), 촌극〈딸의 소식〉(2004), 단막극〈멀고도 가까운 곳〉(2009) 등이 있다. ‘제2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2010.4.) 전국전문가예술축전에서 단막극〈락원의 숨결〉로 2등상을 수상했다.

○ 함경남도예술단: 함경남도 내 예술단체들을 통합하여 1948년 3월 10일 함흥로동악단으로 창립된 후 1952년 함남도립예술극단으로 개칭했고, 1959년에 함경남도 가무단과 함경남도 연극단으로 분리되었다가 1972년 12월 통합하여 함경남도예술단이 되었다. 이후에도 또 한 차례 분리와 통합을 반복했다. 함남 함흥시에 소재하여 함흥대극장을 주 공연장으로 하고 있으며, 지방예술단체임에도 중앙예술단체에 비견할 만한 규모를 자랑한다.
전국예술축전, 전국연극축전, 전국요술축전, ‘2.16예술상’ 개인 경연 등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1970년대 가극인〈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피바다〉식 혁명가극으로 재창조한 성과가 인정되어 1998년 5월 김일성훈장을 받았고 국기훈장 제1급도 수훈했다. 20여 편의 가극을 창작 공연했으며, 2000년 이후 작품으로는 단막극〈사랑의 새 전설〉(2002), 단막극〈무지개〉(2002), 장막극〈행복〉(2004), 단막극〈입대하는 날〉(2004), 단막극〈삶의 보람〉(2009), 단막극〈수정천〉등이 있다.

○ 함경북도예술단: 1947년 5월 25일 함경북도 내 예술단체들을 통합하여 함경북도도립극단으로 창립되어 1972년 12월에 함경북도예술단으로 개칭했다. 함북 청진시에 위치해 있으며, 김일성의 함경북도 예술단 현지지도 40돌을 맞아 국기훈장 제1급을 수훈했다. 대표작으로 혁명가극 <두만강반의 아침노을>, 가극〈철에 대한 이야기〉, 가요〈미래의 주인은 청년 학생들〉,〈요람 속의 아가야〉, 무용 <호미 춤>이 있다.
1995년 이후 작품으로는, 기타4중주〈양산도〉(1995),〈철산봉은 내 나라의 자랑일세〉(1996), 무용극〈우리는 장군님의 딸〉(1997), 촌극〈비상대책〉(1997), 가요〈강철로 당을 받들리〉(1998), 가요〈칠보산 설경가〉(1999), 무용극〈용해장에 제대군인 왔네〉(1999), 죽관중주〈도천리의 5월단오〉(1999), 재담〈모르고 사는 행복〉(1999), 단막극〈직선주로〉(2009) 등이 있다.

○ 황해남도예술단: 1948년 5월 26일 황해도에서 활동하던 예술단체들을 통합하여 발족했으며, 1952년 4월에 황해남도도립예술극장 집단으로 개칭했다. 이후 황해도가 남도와 북도로 나뉘면서 황해남도 도립예술극장 집단으로 분리됐고, 1972년 12월에 황해남도예술단으로 개칭되었다. 해주 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해남도 예술단은 전국 규모의 대회, 축전, 경연들에 참가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가극〈영원한 흐름〉과〈통일의 광장에서 다시 만나리〉, 연극〈농민 김제원〉, 가요〈우리는 농장의 다정한 부부〉, 무용〈나무군총각과 밤 줍는 처녀들〉등이 동 예술단의 대표작들이다.
1995년 이후의 작품들로는, 가요〈제대군인 병사들 연백별로 왔다네〉(1995), 무용〈몽금포의 풍어맞이〉(1996), 가야금 독주〈풍년맞이 도리깨〉(1996), 가요〈구월산아 길이 전하라〉(1997), 대화 시〈붉은기 앞에 다진 맹세〉(1997), 가요〈농업전선은 1211고지〉(1998), 노래재담〈국토 건설 좋을 시구〉(1998), 가요〈두벌농사 꽃 펴가세〉(1999), 무용〈농민 영웅 김제원〉(1999),〈병사의 어머니〉(2000), 단막극〈푸른 다박솔〉(2002), 단막극〈주인〉(2009), 단막극〈어머니의 결혼식〉등이 있다.

○ 황해북도예술단: 1948년 7월 1일 효종 가극단, 재령 악우회 등 사리원에서 활동하던 예술단체들을 통합하여 황해도 이동 예술대로 발족했고, 1952년에 황해북도도립예술극장 집단으로 개칭한 후 1954년 분도(分道)로 황해북도 도립예술극장 집단으로 새롭게 조직되었고, 1972년 12월에 황해북도예술단으로 개칭되었다. 황북 사리원 시에 소재하며 전국 규모의 대회, 축전, 경연에 참가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대표작으로는 민속 가무극〈봉산탈춤〉, 연극〈백두산〉, 연극〈새길〉, 가요〈내 한생 바라는 마음〉, 가무〈정방산의 봄〉, 단막극〈어머니와 아들〉등이 있다.
1995년 이후 창작·공연 작품으로는 민족기악중주〈풀무타령〉(1995), 가요〈위대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1995),〈아리랑〉(1996),〈온 나라가 축복하네〉(1995),〈충성의 애국미 장군님께 드리세〉(1997), 손풍금 독주〈정일봉의 우레소리〉(1997), 재담〈우리군대 한 모습〉(1998), 가요〈정방산은 사랑의 명산일세〉(1999),〈주체의 쇠물이 흐른다〉(1999), 촌극〈웃으며 가자〉(1999), 단막극〈사랑의 열도〉(2000) 등이 있다.

○ 자강도예술단: 1949년 4월 1일 강계 군당예술공작대와 자강도 내 예술단체들을 통합하여 자강도이동예술대로 발족하여, 1950년 9월 자강도립악단, 1953년 3월 자강도립예술극장 집단, 1962년 6월 자강도가무단, 1972년 12월 자강도예술단으로 개칭했다. 자강도 강계 시에 소재하며,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 시기에 ‘강계 혁명정신’이 세차게 나래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자강도예술단의 대표작으로는, 가요로〈장자산 기슭의 유서 깊은 집이여〉,〈어머님 그 영상 그리시였네〉,〈영광의 천 리 길 답사대행진곡〉,〈당이 바라는 길 나는 가리라〉등이 있고, 가극〈장자강반에 핀 꽃〉(1964), 민속무용〈약초 캐는 노인들〉, 단막극〈우리 어버이〉와〈붉은 씨앗〉(2004), 촌극〈아들이 오는 날〉(2004) 등이 있다. 2011년 5월에는 평양의 동평양 극장에서 공연했다.

○ 량강도예술단: 1955년 2월 4일 량강도립예술극단을 전신으로 하여 창립되어, 1962년 량강도가무단, 1972년 12월 량강도예술단으로 개칭되었다. 량강도 혜산 시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로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사상을 고취하고 무장시키는 가극, 연극, 무용극 등의 작품들을 창작 공연한다. 이 밖에도 성악, 기악 작품들과 무용소품들을 창작하여 도시와 산간벽지, 농촌과 임산 작업소들을 순회공연한다. 혁명가극〈해빛(햇빛)을 안고〉, 음악무용서사시 극〈인민의 념원을 지니시고〉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0년 ‘제2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전국전문가예술축전에서 단막극〈생의 뿌리〉로 3등상을 수상했다.

○ 강원도예술단: 1948년 3월 20일 강원도립 악단으로 출범하여 1952년 3월 강원도립예술극장 집단, 1962년 6월 강원도가무단, 1972년12월 강원도예술단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작은 혁명가극〈남강마을 녀성들〉과〈금강산의 노래〉, 경희극〈산울림〉, 가요〈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볼 때면〉, 무용〈바다의 노래〉, 노래이야기〈우리 님 영웅되었네〉(2009) 등이 있다. 특히 1961년 작인 경희극〈산울림〉의 경우 당시 김일성이 이 작품을 관람한 후 “잘 된 연극”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방예술단체에서 창작한 작품이 50년 만에 중앙예술단체에 의해 재창작되어 대대적으로 공연한 아주 드문 경우이다.
경희극〈산울림〉은 원래 북한의 첫 경희극 작품으로 ‘천리마 시대’라고 불리던 1960년대에 강원도립예술극장 집단(현 강원도예술단)에서 창작(1961, 이동춘 작)한 것으로, 연극〈붉은 선동원〉(1961, 조백령 작)과 함께 천리마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2009년 12월 김정일이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커다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국립연극단에 이 작품을 재창작, 공연할 것을 지시하여 4개월 만에 완성을 보았다. 그 후 2010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1년 동안만 따져 평양과 지방에서 303회의 공연을 진행(『로동신문』, 2011년 3월 27일)하여 수십만 명의 군중이 관람했다고 한다.

○ 개성시예술단: 1952년 1월 13일 개성시 이동예술대로 출범하여 주로 전시가요를 연주하다가 1953년 1월 개성시립극장집단으로 개명되면서 연극 공연을 시작했다. 1953년 9월 평양으로부터 작가, 연출가, 배우 등 70여 명을 배치받아 조직을 정비한 후 1954년 개최된 전국 연극축전에서 연극〈다시는 그렇게 살 수 없다〉로 1위에 입상했다. 개성시 고려동에 위치하며 음악무용 종합공연을 기본으로 하면서 가극, 연극 등 무대예술작품을 창작하여 공연해 왔다.
1950년대에는〈강화도〉(1954),〈바다가 보인다〉등 70여 편의 연극과 40여 편의 무용과 성악 소품들을 공연했고,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천리마 시대의 정신’이라는 슬로건 아래 불과 10일 만에 연극〈꽃은 계속 핀다〉(1962) 등을 창작하는 한편, 가극〈혈해〉,〈충성의 한길에서〉(1968) 등을 자주 공연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무용과 가요의 창작 공연으로 예술단의 활동 방향을 바꿔〈근거지 처녀들〉,〈통일그네 쌍그네〉,〈농장벌에 봄 가을 함께 왔네〉등을 발표했다.

북한의 시·도 예술단은 창작과 공연 활동도 활발하지만 소속 예술인들의 기량 함양과 평가를 위해 매주 ‘목요 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1주차에는 조 발표, 2주차에는 부서 발표, 3주차에는 예술단 발표회를 열고, 4주차에는 발표 결과들을 바탕으로 이를 개인별로 평가하여 성과를 보인 예술인의 경우 노임(勞賃)에 인센티브로 반영하고 있다.
지방의 고등 예술전문학교(강계, 개성, 사리원, 신의주, 원산, 청진, 평성, 함흥, 해주, 혜산 등) 출신 예술가들이 주로 시·도 예술단에 배치되는데, 준전문 단체인 시·도 예술선전대에 배치되기도 한다. 시·도 예술단 단원 중에는 중앙예술단체(국립민족예술단, 피바다가극단, 만수대예술단, 국립교향악단, 국립연극단, 국립교예단 등)에 입단하기 위해 학력, 직장 등 기득권을 포기하고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평양무용대학 등 평양의 국립예술대학에 재입학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관련연구(남) 박영정·오양열 , 『북한 문화예술 현황분석 연구』,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박영정, 『북한 예술단체 총람』,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참고자료 『문예연감』, 서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9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