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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만일 [So Manil]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문학 > 시인
9분류 인물
집필자 이지순
출생일미상
사망일미상
출생지미상
정의
서만일은 1950년대에 활동했으나 부르주아 잔재와의 투쟁 과정에서 숙청당하였다.
내용
서만일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소년통신원>(1951)으로 미루어 6.25 시기부터 시를 발표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1950년대 활동했으나 1960년대 이후엔 북한 문단에서 찾아볼 수 없다. 서만일은 『조선문학』 편집위원(1953년 10월~1958년 9월), 작가동맹 외국문학분과위원장(1953년 11월), 1956년 제2차 작가대회 당시 작가동맹 서기장을 역임했으나 1958년 10월에 숙청당했다.
1955년 제2차 소비에트작가대회에 참가했던 조선작가대표단의 귀환 보고대회 이후 북한 문단에서는 도식주의 관련 글들이 발표되었다. 이 시기 시에서는 서정성이 높은 시들이 창작되었다. 1956년 제2차 조선작가대회에서도 이전의 도식주의 경향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성된 1958년에 이르러 ‘공산주의적 교양’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이 시기 북한 문단의 쟁점은 새로운 ‘공산주의적 인간 전형’을 창조하는 것에 있었다. 공산주의 문학과 배치되는 문학은 부르주아 잔재라고 규정하게 되었다. 1958년과 1959년 초, 북한 문단의 사상투쟁은 1958년 10월의 김일성의 교시 「작가 예술인들 속에서 낡은 사상 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일 데 대하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일성의 교시에서 문학계 내부에 잔존하는 부르주아적 잔재와 투쟁을 요구했고, 서만일도 비판받기 시작했다. 김하명은 “안막, 서만일, 윤두헌 등에 의하여 류포된 부르죠아 유미주의의 해독성이 결정적으로 폭로”되었다고 비판하였다. 1960년대 초 한설야가 숙청될 때 안막, 신불출, 박팔양, 민병균 등과 같이 한설야와 가깝게 지내던 예술가들도 대거 숙청되었고, 이 때 서만일도 함께 사라졌다.
시집으로 『봉선화』(1955)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인도기행』(1957), 동시집 『숲속에서』(1958) 등이 있다.
관련어 제2차 조선작가대회, 유미주의, 도식주의, 조선문학
관련연구(남) 김재용, 『북한 문학의 역사적 이해』, 서울: 문학과지성사, 1994.
오성호, 『북한시의 사적 전개과정』, 서울: 경진, 2010.
우대식, 「해방 후 북한 시의 양식적 변모에 관한 고찰」, 『한국시학연구』, 제4호, 2001.
관련자료(북) 『제2차 조선작가대회 문헌집』, 평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6.
김하명, 「조선로동당의 문예정책의 빛나는 승리」,『전진하는 조선문학』, 평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