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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흔 [Ho Namhu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회화 > 유화
9분류 인물
집필자 박계리
출생일1912년 11월 13일
사망일1982년 12월 23일
출생지평안북도 창성군 창성면 성풍동
정의
허남흔은 주제로 그릴 만한 계기적 순간을 포착하고 인간의 정서를 설명하는 전개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 유화 화가이다.
내용
1921년부터 1931년까지 서울 보통학교와 서울 고등보통학교에 다녔다. 해외의 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나 1934년 중퇴하였다. 귀국 후 1938년까지 서울 극예술연구회에서 무대미술을 하였다. 이 시기에 유화, 연극 무대미술, 평론, 시나리오 등 여러 분야의 창작 활동을 했다. 1947년 신문사의 광고부 소속 기자로 활동하며 다방면의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다. 1952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에서 활동하였다. 1963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소속으로 량강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수, 대학미술관 관장으로 재직했다.
허남흔의 창작 활동은 해방 전후 다양한 분야에서 이어지다가, 1952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에서 활동하며 유화에 집중되었다. 이 시기 대표작은 <김일성동지의 초상>(1952), <중국인민지원군 대동교목교건설>(1954), <풍경>(1955) 등이다. 유화 <꽃분이 시집간다>(1956)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한 이력이 있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황해제철소에 파견되었다. 이때 조선화 <자동화를 위하여>(1959), 유화 <로체공>(1960), <첫 쇠물돌격대원들>(1961), <전후 3일만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황철에 오시다>(1963) 등을 제작하였다. 1963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의 활동으로 량강도에서 지내며 <첫 떼가 내린다>(1975) 등의 작품을 그리면서, 인재육성사업을 벌였다. 1959년 『조선미술』에 자신의 경험을 기사「미술써클운영에서 얻은 경험」으로 게재하기도 하였다. 허남흔은 조선화도 그렸다.
허남흔의 작품은 사건의 한 순간을 잘 포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련어 평양미술대학, 국가미술전람회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참고자료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