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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천 [Cho Kicho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문학 > 시인
9분류 인물
집필자 김낙현
출생일1913년 11월 6일
사망일1951년 7월 31일
출생지구소련 연해주 스파스크 촌
정의
조기천은 재소 고려 시인으로서 1945년 8월 29일 소련진주군 제25군의 7부(군정치국)와 함께 입북하여 북한문학 형성기에 실질적으로 북한문학을 이끈 향도자적 역할을 하였다.
용례/관용구
그의 시작품들은 철학적여운이 깊고 시적격조와 기백이 높으며 사건성이 강하고 호방하고 호소적인 문체로 일관된 특징을 보여준다. 『광명백과사전 6』, 2008.
내용
조기천은 연해주 변강 깔리닌구역 오일촌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농민청년학교를 졸업하고 소왕령(지금의 우스리스크) 소재 조선사범전문학교 재학 시절 18세(1930)에 재소고려인 신문 『선봉』에 첫 시 <파리꼼무나>를 발표하였다. 이후 조기천은 소련에서 사회주의 건설과 민족해방의식을 표출한 <공격대원에게>(1931), <야외연습>(1932) 등의 시를 발표했으며, 소련에의 동화와 서정성을 담은 <새해>(1942)라는 시를 창작하였다. 그는 옴스크고리끼사범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으며, 1938년 졸업 후 『레닌기치』에서 편집국장을 역임하면서 시와 희곡에 대한 평론활동을 하였다. 1941년부터 조기천은 극예술과 더불어 『레닌기치』 독자문예란에 실린 시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평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자료상으로 확인된 그의 평론은 시평(詩評) 총 6편과 희곡평 1편이다.
해방 직후 입북한 조기천은 재소 고려문인이었던 전동혁, 림하 등과 함께 소련군정당국이 한국어로 발간하였던 『조선신문』의 발행업무와 편집 일을 담당하였다. 이후 조기천은 당시 북한문단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조선신문』과 『조쏘문화』에 수시로 소련의 문학 작품들을 번역하여 북한문단에 소개하였다. 조기천이 북한에서 발표한 첫 시는 <두만강>이다. 조기천은 북한문학 형성기에 실질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북한에서 발표한 <을밀대에서 부른 노래>(1946)는 초기 북한문학에서 있어야 할 시의 표본이 되었으며, 토지개혁을 소재로 한 서정서사시 <땅의 노래>(1946)는 북한 최초의 서정서사시이다. 조기천은 <땅의 노래>를 통해 서정서사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이후 북한문학에서는 서정서사시라는 새로운 장르가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편서사시 <백두산>(1947)은 북한문학에서 서사시를 성행하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으며, 항일혁명 문학의 원류로 평가된다. 또한 노동을 소재로 한 첫 장편서사시 <생의 노래>(1950)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조기천은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에 공로메달을, 1951년에 국기훈장 제2급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조기천은 1951년 3월에 북한과 남한의 문학예술총동맹 합동회의에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6.25 전쟁 중 1951년 7월 폭격에 의해 사망한 조기천의 죽음을 애도하여 북한에서는 수상 김일성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거의 모든 주요 인사들이 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준비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김정일에 의해 혁명시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조기천은 여전히 북한문학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그의 시문학은 북한문학 형성기에 북한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과 장르를 선보이고 개척한 시인이었다. 시기만 달라졌을 뿐이지 소련 시절에 조기천이 체험했던 사회주의 건설과 당시 재소 고려문인들의 창작방법론은 해방 직후 북한문학에서 그대로 답습되고 재현되었던 것이다.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을 살며 문학 활동을 했던 조기천은 통일의 시대에 민족문학의 길을 모색하는데 필수적인 하나의 접근점이 된다.
관련어 백두산, 서정서사시, 조쏘문화, 서사시
동의어 趙基天
관련연구(남) 김낙현, 「조기천 시 연구」, 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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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김낙현, 「조기천 시 연구」, 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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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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