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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함광 [An Hamkwang]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문학 > 평론가
9분류 인물
집필자 박태상
출생일1910년 5월 18일
사망일1982년 2월 5일
출생지황해남도 신천군 문화면
정의
안함광은 일제시대 하에서 카프(KAPF)가 조직된 후 그 조직에서 해주지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평론을 집필하는 활동을 하다 6.25 전쟁 때 월북하여 황해도 예술련맹위원장, 북조선문예총 제1서기장 등으로 사업하였으며 신문사에서도 일하였다.
용례/관용구
그들의 사랑관계의 곡절이라든가 순영이의 생애와 운명의 추구에 있어 천세봉의 「안개 흐르는 새 언덕」은 사실주의적 진실성을 보여주었으며 그 심리의 변증법을 충분히 예술적으로 해명하였다. 안함광, 「영광스러운 혁명 전통에 대한 송가」, 『문학신문』, 1966년 9월 9일.
내용
안함광은 카프문학 운동기에 있어 김기진, 임화, 김남천 등과 함께 왕성한 비평활동을 통해 프로문학 이론의 수립과 심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비평가였다. 특히 식민지 조선의 경험적 구체성을 소중히 여겨 계급문학이론을 일관되게 견지하면서도 조선적 특수성이라는 명암을 신중하게 고려하였다. 카프 해산기를 즈음해 내놓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수용문제에 대하여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표명했다. 또 1930년대 대다수 인구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면서 농민문학론을 제창하였다. 그는 농민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의 헤게모니를 강조함으로써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었다. 그의 창작방법론에 대한 입장은 궁극적으로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으로 귀결되었다. 예술의 특수성과 보편성, 프로작품의 예술적 형상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폭넓은 사유와 유연한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프로문학의 도식화, 공식화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잊지 않았다. 해방 이후 안함광은 고향에 머물면서 1967년 주체사상에 반대하여 숙청되기까지 북한의 문예이론을 주도하였다. 특히 1956년에 기술된 『조선문학사』는 북한에서 간행된 첫 번째 문학사로 기록되었다.
안함광의 주요 평론으로는 「예술과 정치」(『문화전선』창간호, 1946.7), 「북조선 민주문학운동의 발전과정과 전망」(『조선문학』창간호, 1947.6)을 비롯 「문학의 일보 전진을 위하여 무엇이 요구되는가」(1948), 「예술의 계급성」(1949), 「전시의 싸우는 조선의 시문학이 제기하는 몇가지 문제」(1951)와 1952년 9월 엄효식, 한효 등과 공저 출판한 『청년들을 위한 문학론』 등이 있다.
그 뒤 『최서해론』(1956)을 펴내고는 오랜 침묵 끝에 1966년 『문학의 탐구』라는 평론집은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출판사에서 출판한 이후로 그의 평론 활동을 접할 수가 없는 상태이다.
그의 초기 비평은 철저한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각한 계급의식 확립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1930년대 초 예술운동의 볼셰비키화론에 동조하였지만 볼셰비키론자들의 좌익 편향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였다. 그의 이러한 비판을 통하여 실천적 프로문학론을 주장하게 된다. 문학의 실천적 행동을 주장하는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헤게모니 장악에 주안점을 두어 농민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적극적 주입을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농민을 단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주입받아야 하는 종속관계로 이해하고 있어 농민문학에 대한 도식성을 드러내었다. 안함광은 카프 해소에 대하여 다각적 검토의 필요성만을 제기했을 뿐이다. 그는 이보다도 창작방법논쟁을 비롯하여 프로문학의 왜곡에 대한 비판에 주력한다. 그 뒤 그는 조선 프로문학의 초기 관념적 낭만주의가 빚어낸 도식주의적 편향의 극복을 위한 이론적 근거로 혁명적 낭만주의를 제기한다. 그의 혁명적 낭만주의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좀더 구체적으로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안함광은 작가의 생활적 토대를 강조하는 주체적 세계관의 확립과 사실정신에 입각한 사실문학을 주장하면서 조선적 특수성에 합치되는 리얼리즘의 구현을 위해 노력한다. 이때부터 그는 이데올로기의 교조성을 벗어나는 면모를 보여주면서 프로문학의 계급성과 당파성의 퇴조를 1930년대의 급격한 현실의 변화에 대해서 거개의 문학자와 마찬가지로 안함광 또한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안함광 역시 그의 이론 체계상에 현격한 변모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1938년 8월에 씌어진 「조선문학의 정신검찰 - 세계관, 문학, 생활적 현실」에서 세계관의 주체화를 제시하고 있다. 해방 후 그의 문학론의 중심을 이루는 고상한 리얼리즘은 일제시대의 그의 문학론에서 보이던 세계관과 구체적 현실성과의 대립적 인식이 여전히 변증법적 관계로 관계 맺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월북 후에 그는 『조선문학』에 「북조선 민주문학운동의 발전과 성과」를 시발로 여러 평론을 발표했다. 「예술과 정치」, 「문학창조의 방향」, 「8·15 해방 이후 소설 문학의 발전과정」, 「최서해의 작품세계와 그의 언어형성적 특성」 등이 그것이다. 그는 또 이러한 평론들을 모아, 평론집 『문예론』(1947)을 냈다.
안함광은 6.25 전쟁 중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전후에 그는 김일성대학의 교수로서 교양과 문학사 및 평론가로서 지속적으로 활발한 운동을 벌인다. 그리하여 북한 최초의 문학사로 알려진 『조선문학사』(1956)를 간행하기도 하여 북한에서 저술된 『조선문학사』의 기틀을 세웠다. 또한 북한에서 문학예술에 대한 가장 커다란 논쟁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주의 발생, 발전논쟁’ 그리고 ‘민족형식과 민족적 특성’ 규명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보였다. 1982년 2월에 작고하였다.
관련어 조선문학사, 혁명적 낭만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동의어 安含光
관련연구(남) 이도연, 「안함광 비평 연구」, 『동아시아 문화연구』, 50집, 2011.
장사선, 「안함광의 해방 이후 활동 연구」, 『동서문화연구』, 8집, 2000.
김재용, 「안함광론」, 『1930년대 민족문학의 재인식』, 서울, 한길사, 1990.
류양선, 「1930년 전후의 한국 농민문학론 연구」,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1990.
권영민, 「식민지시대의 농민운동과 농민문화」, 『한국 민족문학론 연구』, 서울: 민음사, 1988.
참고자료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문학예술사전 중』,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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